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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계 - 단편
최고관리자 0 20,018 2022.10.28 15:58


며칠 전, 친구 희수 놈에게서 그런 제의를 받았을 때, 처음엔 난 펄쩍뛰며 정색을 하고 거절했었다. 사실 그 제의는 심약한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충격적이고 당황스런 일이었다. 녀석과는 고등학교 시절 단짝이었지만 녀석이 대학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는 멀리서 간간히 서로의 안부만 묻고 지내다가 내가 직장관계로 지방이며 동남아며 여기저기 전전하면서 격조해져서 결국 7년 전부터는 소식이 끊겨진 상태였다. 난 희수가 미국에서 기계공학 쪽으로 박사를 마치고 대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됐다는 말을 들은 게 마지막이었다. 희수야 내게 계속 연락을 취했었겠지만 내 사정으로 두절이 된 거였고 나중에 내가 희수를 찾았을 땐 희수가 독일 어딘가 교환연구원으로 가있다는 확실치도 말만 듣고는 두어 번 더 연결을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만 거였다. 그저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만나겠지 하고 막연한 기대만 담고 있었다.


환경이 생활을 지배하다보니 당장 살기에 바쁜 난 녀석의 존재를 한참이나 잊고 살았는데, 육 개월 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휴가철 막바지에 녀석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 얌마, 너 살아있었구나. 난 너 죽은 지 알았다. ’




희수는 전화에다 대고 내게 욕을 해대며 원망부터 늘어놓았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나와의 연락이 두절된 후 백방으로 내 소식을 알아봤지만 국내도 아니고 미국에서 그러자니 한계가 있더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동창회며 내가 전에 근무했던 직장과 날 알고 있음직한 친구들에게 다 연락을 취해봤지만 허사였고 갑자기 독일로 들어가게 됐을 때도 혹시 내게서 소식이 올까봐 주변 사람들에게 단단히 부탁을 했었다고 한다.


사실 그때는 내가 무척 어려웠던 시기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나름 중국관련 사업을 해본답시고 벌려놨다가 쫄딱 말아먹고 자의반 타의반 식으로 중국에서 도피 아닌 도피생활을 하고 있던 때였다. 당연히 지인들과의 소통도 끊어졌고 형제들과도 소원해 있던 때였다.




‘ 너 지금 어디야? 당장 보자. ’


‘ 응? 넌 어딘데? 미국 아냐? ’


‘ 얌마, 나 한국 들어온 지 6개월 됐어. 그동안 너 찾느라고 똥줄이 다 빠졌다. ’




희수는 부산 해운대에서 가족과 휴가를 즐기다가 내 핸드폰번호를 지금 막 알게 됐다며 당장 만남을 종용했다. 녀석은 내 예전 직장동료의 전화번호를 찾아내고 통화를 했던 거였다.


그렇게 해서 우린 그 다음날 서울시내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었다.


녀석은 H대에 전임자리가 나서 귀국을 한 거였고 독일에서 만나 결혼한 그의 부인도 다음 학기에 S대교수로 임용이 내정돼있다고 했다. 우린 반가운 마음에 호텔 바에서 새벽까지 통음을 했다. 그간 쌓인 얘깃거리야 끝도 없었겠지만 난 녀석에게 내 심금을 다 보여주기가 망설여졌다. 녀석은 어쨌든 금의환향한 거고 반면에 난 녀석 앞에서 스스로 초라함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였을 것이다. 내가 자꾸 말을 아끼니까 주저하던 녀석이 술이 거나해지자 기어코 물어보는 바람에 근황만 얘기하는 데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결혼해서 일 년 만에 깨지고 사업에 실패해서 중국과 동남아를 전전하다가 삼 년 전쯤에서야 겨우 수원에서 자리를 잡고 이제 한숨 쉴만하다는 얘기 정도였다.




‘ 그래, 너 그동안 사연이 많았구나. 아무튼 이렇게 건재하니까 됐어. 너 얼굴은 너무 좋아 보인다. 누가 너하고 내가 친구라면 믿겠냐? 니가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인다. 너 고생했었다는 거 다 거짓말같애. 나봐라. 공부에 짜들어서 파삭 늙었잖아. 하하하. ’




희수는 정말 나보다도 대여섯 살은 더 먹어 보였다. 따지자면 희수는 제 나이대로 보이는 거고 내가 나잇살을 먹지 않은 까닭일 게다. 타고난 피부 덕에 사람들은 내 나이보다도 훨씬 어리게 봐주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우린 새벽까지 위스키를 두 병이나 비웠다. 희수는 호텔 객실에서 자고 가겠다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자기 집으로 끌고 갔다. 방이동 s 아파트 녀석의 집은 40평 대였다. 오면서 차에서 처가 덕 좀 봤다고 하는 말이 아마 귀국하면서 그 아파트를 구입한 얘기 같았다. 아무리 미국에서 직장에 있었다지만 이제 신출내기 대학교수가 강남에서 그만한 아파트를 갖기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희수가 내 어깨를 두르고 현관 앞에서 호기롭게 초인종을 눌러대니까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린다. 난 처음 만나는 친구 부인 앞이라 조심스러워 정신을 가다듬느라 긴장을 했다. 그렇게 불쑥 새벽녘에 기습을 하는 정황이 몹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 오오, 달링, 나 왔다. 여기는 내 친구 호진이, ’


‘ 어서 오세요. 그러잖아도 이이한테 전화를 받고 기다렸어요. ’




자그마한 체격에 단발머리, 탤런트 박선영과 흡사한 이미지의 희수부인은 무척 앳돼보였다. 나중에 안 거지만 그녀는 희수나 나보다 한 살이 연상이었는데 워낙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로 동안이라고 자부하던 나보다도 오히려 젊어보였다.


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하얀 낯빛과 대조돼서 이지적이고도 단아하게 보이는 여자였다.


그 시간 술에 취해 들어오는 우리를 전혀 싫은 내색 없이 맞아주었다. 희수가 미리 주문을 해놨던 건지 술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먼저 차를 내오며 살짝 내가 행여 피곤해할지도 모르는데 술을 권해도 되는 건지 자기 남편에게 떠보는 게 전부였다. 결국 그 술자리는 늦은 아침까지 이어졌고 난 희수 부인이 안내하는 방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한낮이 지나고 어스름해서야 깼는데 진즉 해장국을 끓여놨던 건지 금세 밥상이 대령됐고 무안해하는 나에게 계속 웃음을 보이며 대접해 주었다.




그날 이후 희수와는 서너 차례 더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희수 놈은 날 자기 집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녀석의 부인에게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민승희, 모 여대 독문과를 졸업 후 독일로 유학을 가서 희수를 만나 결혼했고 학위를 마치고 친정아버지가 재단이사로 있는 국내대학에 벌써 자리가 마련됐는데도 남편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뒷바라지를 하다가 온 그녀는 유학파 같지 않게 너무도 한국적인 여자였다. 말수도 적었고 언제나 표정도 온화했다. 난 그런 그녀가 어려웠다. 내가 워낙 숫기가 없는 탓도 있지만 도무지 빈틈이 안 보이는 그녀에게 친구 부인이라해서 맘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둘 사이엔 네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는데 거반 외할머니에게 맡겨져서 있는 눈치였다. 부부가 다 해야 할 공부가 많았던 것이다.




며칠 전 그러니까 정확히는 삼일 전 화요일 날, 희수가 얼굴 한 번 보자며 연락을 해와 약속장소인 잠실 롯데호텔 지하 바로 갔더니 녀석은 먼저 와서 잭다니엘을 한 병 까놓고 있었다.




‘ 웬일로 술이 바뀌었냐? ’




평소 스카치를 즐겨마시던 녀석인지라 의아해서 물어본 거였다.




‘ 으응, 오늘 따라 버번이 먹고 싶어서, 미국에선 이거 잘 먹었었지. 넌 다른 걸로 해라. ’


‘ 아냐, 나도 그냥 그거 먹을 게. 오랜만에 다니엘 콕으로 먹어보지 뭐, ’




낮에 전화 목소리가 어쩐지 가라앉아있는 거 같아서 난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나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술 한 병이 거의 빌 때까지 싱거운 얘기만 하던 희수가 내게 주저주저하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호진아, 너 오늘 내 고민 좀 들어줄래? ’


‘ 응, 그래 말해라. 그러잖아도 너한테 뭔 일이 있나 하고 물어 보려던 참이었어. ’


‘ ,,, ... 호진아 실은 내가 지병이 있다. ’


‘ 그래? 무슨 병인데? ’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녀석이 혹시 암이라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싶어서였다.




‘ 당뇨야. ’


‘ 당뇨? ’


‘ 응, 그래, 당뇨. 원래 집안 내력인가 봐. 우리 아버지도 당뇨합병으로 돌아가셨잖아. ’


‘ 심각해? ’


‘ 뭐 당조절을 잘 해야겠지. 섭생에 주의하고 아무튼 제약이 많아. ’


‘ 당뇨 있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 요즘은 약이 좋아서 조금 조심만 하면 된다던데... ’


‘ 그래, 근데 문제는 당뇨뿐이 아니고... ’


‘ 뭐 다른 게 있어? ’


‘ 당연히 합병증세가 있지. 내가 너한테 말하고 싶은 것도 그 거 때문이야. ’


‘ 뭔데 그렇게 말을 돌려 하니? 답답해 죽겠다 야, ’


‘ 나 임포야. ’


‘ 임포? ’


‘ 응, 임포텐스, 발기부전이지. ’


‘ ... ... . ’


‘ 벌써 이 년 됐어. 병원에선 당뇨로 오는 증세일 거라는데, 심인성일 수도 있다더구나. ’


‘ 비아그라 같은 건 먹어 봤어?


‘ 그래, 근데 소용없어. 비아그라는 원래 나 같은 당뇨환자에게는 처방을 잘 안 해주는 건데, 어찌어찌 구해서 먹어 봤어. 근데 그거 먹고 나 죽는지 알았다. 비아그라가 심장병환자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나봐. 내가 협심증도 약간 있잖아. 그걸 먹었더니 금방 가슴이 터질 거 같은 게 금방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니까. 니미럴, 자지 한 번 세우려다가 심장이 서는 줄 알았어. ’


‘ 그랬구나. 너 마음고생이 심했겠다. 너 와이프도 알고 있는 거지? ’


‘ 그래, 당연히 알게 됐지. 벌서 이 년이나 그랬잖아. 처음 몇 달은 발기가 안 돼도 페팅으로 억지로 때웠었는데 그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 그러니까 와이프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거야. 본의 아니게 속인 꼴이 되었어. 두어 달 그러다가 결국 실토를 했지. 와이프가 걱정을 하니까 그때부턴 페팅으로도 못하겠더라구... ’


‘ 그랬구나. 그게 원래 심인성으로도 같이 오는 걸 거야. 니가 의기소침해지니까 더 힘들지. 승희씨랑 잘 상의해서 서로 개선을 해봐. 그런 건 원래 부부가 합심해서 극복해야 효과가 있다던데, ’


‘ 틀렸어. 희망이 안 보여. 이젠 정말 밤이 무섭기만 하고 스트레스에 치받혀 죽고 싶은 심정이야. ’


‘ 야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냐? 세상에 그걸로 고민하는 부부가 어디 한둘이냐? 다 너처럼 그렇게 절망하고 있지 않아. 길은 얼마든지 있어. 우선은 니가 승희씨와 마음을 열어야 돼. ’


‘ 그게 쉽지 않아. 그 사람과 점점 멀어지는 거 같아. 내가 자꾸 시선도 정면을 피하게 돼. 무슨 죄지은 놈처럼 당당해질 수가 없어. ’


‘ 야, 너 정말 큰일이구나. 내가 봤을 땐 너의 발기부전보다 지금 너의 공황상태가 더 심각해. 그럴수록 승희씨에게 의지해야 하는데... 그리고 내가 봤을 땐 승희씨가 그런 걸로 널 압박할 사람은 아닌데, 오히려 널 위로하고 배려할 사람 아니냐? ’


‘ 물론 겉으론 그러지. 그런데 그게 말야. 호진아, 실은 우리 와이프가 무지 뜨거운 여자야. 심지도 굳고 의지가 강한 면도 있지만 그 여자 생리적으론 무척 색욕적인 체질이야. ’


‘ 정말 ? ’




난 민승희를 떠올리며 그녀의 그런 모습이 당최 믿기지가 않았다.




‘ 그래, 우리가 첨 만났을 땐 정말로 하루 24시간 벌거벗고 침대에 누워 그것만 하기도 여러 번 그랬어. 와이프는 하루 밤에 열 번도 더 오르가즘을 느끼는 체질이야. 의지가 있으니까 내색을 안 하는 거지. ’


‘ 그래서 승희씨가 노골적으로 네게 불만을 표시하든? ’


‘ 아니, 그러진 않아. 내겐 곧 나아질 거라고 위로하는 편이야. 자기는 괜찮으니 신경 쓸 거 없다고도 해. ’


‘ 그래, 승희씬 충분히 그럴 사람이지. 그럼 됐지 왜 그렇게 니가 혼자 고통스러워 하니? ’


‘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아. 뭔가 이상해졌어. 그 사람은 가급적 내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게 점점 어색함만 쌓여져. 당장 잠을 잘 때도 의식적으로 내게 살을 붙이지 않으려고 해. 그러다보니 침대에서 둘 사이가 점점 멀어져 서로 침대 양끝에서 자게 되더라구 ... 물론 와이프가 나와 접촉하기 싫어한다는 건 아냐. 그 사람이 날 배려한다는 게 그 모양이 되가는 거야. 엉망이 되가는 거라구 . ’




난 갈증을 느끼고 얼음을 가득 채운 콜라를 들이켰다. 잭다니엘은 벌써 바닥이 나 있었다. 새로 한 병을 더 시키려다가 난 바텐더에게 짐빔이 있는 가고 물었다. 이런 분위기에선 왠지 끈적끈적한 다니엘 보다는 칼칼한 맛이 강한 짐빔이 더 어울릴 거 같았다.




‘ 그래서 말인데 호진아, ’


‘ 응, 그래, 말해 봐. ’


‘ 니가 날 좀 도와주면 안 되겠니? ’


‘ 그럼, 도와야지. 내가 널 안 도우면 누가 돕겠니? 근데 어떻게? ’


‘ 호 호진아, 너 오해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줘라... ’


‘ ... ... ? ’


‘ 호 호진아, 니가 니가 말야, 우리 와잎 , 한 번 자주면 안 되겠니 ? ’


‘ 뭐?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희수가 막 그 말을 꺼내기 직전 내 머리 속을 번뜩 스치는 예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현실이 되었다. 난 순간 몸이 붕 떴다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잠깐 어지러웠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궁리가 그 찰나에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이었다. 우선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나의 뜨악한 표정만 정적을 만들고 있었다.




‘ 너 너,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


‘ 호진아, 니가 무척 당황스러운 건 알아. 그리고 화가 난 것도 알아. 근데 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심사숙고 재숙고해서 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그 그러니까 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내 말을 들어줘. ’


‘ 글쎄, 니가 무슨 말을 해도 난 이해하지 못 하겠다. 아니, 이해 정도가 아니고 난 지금 니놈의 안면을 한 번 갈겨주고 싶다. 내가 차라리 남의 유부녀와 바람을 피우면 피었지 어떻게 니 마누라하고 ... 에이 친구란 놈이 . ’


‘ 이건 단순히 바람의 차원이 아니야. 내겐 너무 절실해. 난 와잎을 정말 사랑해. 그녀와 헤어지는 건 상상도 못해. 그래서 이러는 거야. 호진아, 너 정말 냉철하게 생각해 봐. 니가 아니라도 난 누구의 도움이 필요해. 와잎을 저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저 여자가 요즘 시름시름 아픈 것도 다 그거 때문인 걸 난 알아. 와잎은 지금 한창 성욕이 왕성한 나이야. 내가 내 마누랄 모르겠니? 와잎은 체질적으로 금욕이 안 되는 여자야. 속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억지로 막고 있으니까 저렇게 몸이 아픈거라구, 이건 나도 그렇고 와잎도 못 할 짓이야. ’


‘ 글쎄, 니 말대로 그렇다 치자. 근데 왜 하필 상대가 나냐고? 다른 사람을 찾아 봐. 허긴 요즘 세상에 더러 그런 종자들도 있긴 있는 모양이더라. 쓰리 섬인가 뭔가 지 마누라를 딴 놈하고 같이 나눠먹는다는데 별 미친……. 너도 차라리 그런 사람을 구해보지 왜 친구인 나를 끌어들이는 거냐구? ’


‘ 친구니까, 친구니까,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니? 난 3S이 아니잖아. 그건 도색을 즐기는 거지. 우린 그런 차원이 아니잖아. 와잎 성격상 3 S은 가당치도 않어. 그리고 난 와잎이 딴 놈하고 그거 하는 거 상상하기도 싫어. ’


‘ 난 괜찮고? ’


‘ 그래, 넌 괜찮어. ’


‘ 그런 말이 어디 있어? ’


‘ 실은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널 만나고 니가 두어 번 우리 집을 다녀갔을 때, 꿈에 너하고 와잎이 섹스를 하는 꿈을 꿨었어. 그런데 꿈속에서도 그렇고 깨었을 때도 그렇고 내가 그리 불쾌하지 않은 거야. 오히려 꿈속에선 너희를 보고 내가 즐겼던 것 같아. 아니, 고마웠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그건 아마 와잎에게 다른 남자를 만나게 해줘야 한다는 강박감의 반대급부였는지도 모르겠어. 어차피 와잎에게 다른 남자가 필요하다면 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후론 내 맘이 편해졌어. 너 말고 다른 남자가 와잎과 관계를 하면 그건 곧 나와 내 와잎의 관계가 종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니가 꿈속에 나타나고 그동안 날 괴롭혔던 무언가가 해결책이 생긴 것으로 확신했어. 바로 너야. 난 가끔 그 꿈속을 연상해. 내가 너무 좋은 거야. 마치 내가 섹스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야. 이건 정말이야. ’


‘ 솔직히 니 말을 듣고도 뭐가 뭔지 난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건 안 돼. 아니 난 자신이 없어.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말을 승희씨가 받아들일 거 같애? 넌 어떻게 니 마누라를 설득하려고 했던 건데? ’


‘ 호진아, 사실은 그런 말을 내가 와잎에게 꺼낸 적이 있었어. 한국에 막 와서 쯤인데, 와잎과 외식을 하고 온 날 밤 침대에서 내가 그랬지. 나가서 원나잇스탠드 한 번 하고 오라구. ’


‘ 그랬더니? ’


‘ 뭐 펄쩍 뛰지. 자길 어떻게 보는 거냐구. 난리가 났었어. ’


‘ 거 봐라. 근데 넌 또 그런다는 거야? 어떻게 설득을 시킨다구? ’


‘ 근데 내가 네 꿈 얘기를 한 거야. 꿈에 너와 와잎을 봤는데 내가 흥분되고 발기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그랬지. 그건 사실이야. 솔직히 말하면 난 그 꿈을 연상하면 야릇한 쾌감을 느끼기도 해. 어쩌면 너를 통해서 내가 치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어. ’


‘ 개뿔이나, 그런 엉터리가 어딨어? ’


‘ 내 얘기 계속 들어 봐. 물론 와잎은 망측하다고 계속 말도 못 꺼내게 했지. 근데도 내가 자꾸 그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며칠 있다가 또 얘기를 했어. 또 꿈을 꿨다고 그랬지. 당신이 너무 행복해 하더라. 그런 당신 모습을 보고 나도 행복하더라. 그리고 호진이는 당신이 만나는 다른 남자로 인식이 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다 그랬지. 그리고 네 물건 얘기도 했어. 네 물건은 고등학교 때부터 대단했잖아. 다들 니 거를 부러워했었지. 너처럼 계집애 같이 생긴 놈이 그런 물건을 갖고 태어난 건 복이야. 난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꿈에서 니 걸 본거야. 참 희한하지. 꿈이란 게, ’


‘ 별 엉뚱한 놈 다 보겠네. 왜 그런 쓸데없는 얘기는 해? 괜히 쪽팔리게, 이제 난 니 마누라 얼굴 못 본다. ’


‘ 와잎은 다시 말도 꺼내지 말라고 거절했지만 난 알아. 와잎의 마음이 좀 흔들리고 있다는 걸, 더 결정적인 일은 지난 번 니가 우리 집에 왔을 때야. ’


‘ 지난 번? 한 달 전 내가 너희 집에서 자고 간 날 ? ’


‘ 그래, 그날. 난 와잎의 속마음을 알았어. ’


‘ 어떻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다고? ’




내가 희수 집에서 묵은 게 한 달쯤 전이다. 그날도 역시 희수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에서 묵게 되었고 매번 신세지던 난 미안한 마음에 미리 준비해놨던 향수를 승희에게 선물로 건네주었었다.




‘ 자다가 문득 허전해서 깨었더니 옆에 와잎이 없는 거야. 그 시간이 새벽 너댓시는 되었었지. 난 와잎이 화장실에 갔나 하고 봤더니 안방 화장실에 불이 꺼져 있었어. 그래서 조금 기색을 보고 기다렸는데 좀체 와잎이 들어오지 않는 거야. 그래서 슬그머니 나가 봤지. ’


‘ 그랬더니? ’




난 침까지 꿀꺽 삼키며 희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나가 봤더니 거실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는 거야. 그래서 얼른 네 방문을 열어 봤는데 넌 그냥 자고 있더라구, 그럼 와잎이 화장실에 들어가 있다는 얘긴데 굳이 안방화장실을 두고 거기에 있는 게 이상하잖아. 그래서 가만 숨어서 안을 살폈어. 근데 와잎이 거기서 목욕을 하고 있더라구, 그 시간에 욕조 속에 들어가서 말이야. 간신히 문틈으로 그걸 봤지. 근데... 그거는 ... ’


‘ 근데? ’


‘ 와잎은 무언가에 열중해 있었어. 그래서 내가 엿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를 못 챘던 거야. 욕탕에선 향수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어. 그건 그날 네가 갖다 준 그 향수인 게 분명해. 그리고 와잎은 욕조 안에서 머리를 치켜들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어. 자위를 하고 있던 거지. 난 그때 와잎이 자위를 하면서 널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지. ’


‘ 에이, 말도 안 돼. ’


‘ 아냐, 난 알아. 와잎은 진저리를 치면서 자위를 하는 중간 중간에 타월로 코를 비비곤 했어. 그건 바로 그날 네가 샤워를 하고 쓴 타월이었던 거야. 와잎은 니 냄새를 맡고 있었던 거지. ’




난 할 말을 잃고 술만 들이켰다. 희수의 제의를 처음 들었을 땐 정색을 하고 먼저 거부반응이 나왔는데 녀석의 말을 들을수록 점점 녀석과 동화되는 듯 한 기분이 묘하고도 께름칙했다.




‘ 호진아,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이미 내가 와잎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은 거야. 이건 끝까지 내가 책임져야 돼. 그러니까 니가 날 한 번만 도와줘라. ’


‘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난 못해. 그리고 만약 니말대로 그랬다 치자. 그게 한 번이 무서운 거지. 한 번으로 끝날 일이냐? 내가 아니더라도 넌 또 다른 남자를 물색해야 할 거야.’


‘ 그래, 니 말대로 한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닌지도 모르지. 그래서 더욱 니 도움이 필요한 거야. 니가 계속 도와주면 되잖아. 난 와잎에게 계속 다른 놈을 대줄 순 없어. 우리 둘 다 용납이 안 되는 문제야. 결국 그렇게 되면 우린 헤어지는 거밖에 없어. ’


‘ 그럼 나보고 계속 그걸 하라고? 그리고 난 괜찮아? ’


‘ 응, 넌 나하고 동일인인 거야. 내 대신 니가 와잎에게 섹스만 해주는 거구, 난 정말 스스로도 놀랬어. 니가 나의 대행이라는 게 하나도 거부감이 안 들어. 니가 와잎과 하면서 느낄 때 나도 꼭 느낄 거라는 확신이 들어. 이건 대리체험이 아니고 직접체험인 거라구, 그리고 난 지금 그 순간이 너무 기다려져. 막 흥분돼. 이건 진심이야. ’




희수의 눈에 서린 핏발이 너무 간절해 보였다.




‘ 궤변이야. 어떻게 그런 논리가... 그리고 승희씨는 뭐고? 승희씨가 이걸 받아들일 거냐고? 아무리 그게 그립다고 그 사람도 자존심이 있을 거 아냐? ’


‘ 응, 와잎은 그걸 받아 들여. 그 사람의 자존심을 허물지 않고도 받아들이게 돼있어. ’


‘ 어떻게? 그럼 승희씨가 니 말대로 그렇게 하자고라도 한다는 말이야? ’


‘ 아니, 그렇게는 안 되지. 와잎은 너하고가 아니고 나하고 섹스를 하는 거야. ’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하고 한다니? ’


‘ 이번 주말에 홍천스키장 근처에 펜션 하나를 예약해 놨어. 넌 자연스럽게 우리와 합류할 거구, 난 방에 커튼까지 치고 불을 꺼서 아주 껌껌하게 만들 거야. 그날 밤 자다가 니가 방으로 들어와서 나하고 자리바꿈을 하는 거야. 그리고 넌 내가 되어서 와잎에게 뜨거운 섹스를 선사하는 거지. ’


‘ 야, 임마, 그게 통하냐? 승희씨가 그걸 모를 거 같애? ’


‘ 알겠지. 하지만 와잎도 모르는 걸로 될 거야. 나하고 하는 걸로 스스로가 만드는 거야. 남편과 하는 걸로. ’


‘ 도통 무슨 소린지? ’


‘ 묵계지. ’


‘ 묵계? ’


‘ 응, 묵계, 우린 스스로의 인식을 확신하는 거야. 나와 와잎은 서로에게 충실하고 있는 거지. ’


‘ 그게 가능해? ’


‘ 가능해. 내 말대로 해. ’


‘ 그럼, 난 뭐야? 난 뭐가 되는 거냐구? ’


‘ 호진아, 너 하나만 희생하면 돼. 넌 내 친구잖아. 물론 난 너에게 어떤 댓가도 치룰 수가 없어. 왜냐면 그건 나의 행위니까, 그러니까 너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거야. ’




희수는 내 손을 부여잡고 호소를 하고 있었다.






희수 놈과 약속을 한 날이다. 희수가 승희에게 내가 합류하게 된 경위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모르지만 승희는 시장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찌개거리도 준비했노라고 아침 일찍부터 희수 놈이 내게 전화를 하면서 소란을 떨었다. 저녁 여섯시까지 현지에 도착하겠다고는 했지만 난 오후 네 시가 넘도록 집에서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라 당장 출발해도 족히 세 시간은 넘어 걸릴 텐데도 어쩐지 선뜻 집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희수는 벌써 세 번씩이나 핸드폰을 걸어 출발여부를 물었다. 일 핑계로 좀 늦어져진다고 했다가 결국 차를 몰았다. 스키시즌이 지났는데도 주말의 44번 국도는 더디다. 난 차를 몰고 가는 내내 복잡한 심사다. 이걸 꼭 해야 하나? 막상 희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까? 그러다가 승희의 검은 단발머리가 차창으로 오버랩 되면서 야릇한 풍광이 나타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사고라도 날지 모르겠다. 대명콘도를 지나 약속장소인 펜션을 찾는데 애를 먹는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서 약도만 갖고 찾을려다보니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다. 그때 쯤 희수에게서 다시 핸드폰이 울린다. 바로 코앞에서 헤매고 있는 거였다. 문밖까지 배웅을 나온 희수는 나에게 손으로 브이자의 표시를 한다. 저게 무슨 뜻일까. 내 중압감을 덜어주자는 의미일까, 아니면 스스로의 태연함을 과시하는 액션일까.




‘ 늦으셨네요. 호진씨 기다린다고 우린 졸쫄 굶고 있어요. ’




승희는 늘 그랬듯 엷은 미소를 보이며 날 맞아준다. 식탁에는 상이 다 차려져 있고 우리가 앉아마자 보글거리며 끓는 게찌개가 올라온다.




‘ 어유, 이런데서 먹는 게찌개는 정말 환상적인데요. 승희씨 덕분에 제가 호강합니다. ’


‘ 임마. 이거 너 위해 특별히 시장 봐가지고 온 거야. 알기나하고 먹어. ’


‘ 그럼 그럼 승희씨 게찌개솜씨는 내가 인정하지. 근데 유학을 그렇게 오래 하신 분이 토속음식을 잘하세요? ’‘


‘ 이이가 워낙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미국에서도 거의 그렇게 먹었어요. 근데 호진씨가 동행분이 있다고 해서 좀 많이 준비했었는데 중간에 동행분이 못 오시게 됐다고 해서 냉장고에 남겨놨네요. 덕분에 내일도 게찌개를 먹게 생겼어요. ’




난 무슨 소린가 하고 희수를 바라봤더니 녀석이 눈을 찔끔거린다. 난 이내 눈치를 채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와인이 나왔다.




‘ 여기만 해도 하늘에 별이 총총히 보이네요. 서울을 조금만 떠나오면 이렇게 공기가 막은 것을, 독일서는 시내에서도 별들을 봤는데, ’




승희는 와인 잔을 입에 가져가대며 창밖의 하늘을 유심히 본다.




‘ 승희씨는 독일 어디서 계셨나요? ’




대화가 궁했던 난 쓸데없는 걸 물어본다. 여기서 독일 얘기를 꺼내봤자 내가 끼어들만한 것도 아닌데,




‘ 하이텔베르크에 있었어요. 거기서 쭉 학교도 다녔고, 이이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났죠. ’


‘ 아, 네, ... ’




잠시 또 대화가 끊긴다. 희수가 대화를 주도하면 좋을 텐데도 녀석은 가져온 씨디플레이어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 그런데 호진씨는 오늘 같이 오신다고 했던 분이 여자 친구 아니셨나요? ’


‘ 아, 에, ... 뭐 그냥 조금 아는 사람인데... 여자 친구까지는 아니고.. ’




난 진땀을 빼며 말한다.




‘ 그런데 왜 호진씨는 결혼을 안 하세요? 너무 고르시는 거 아니세요? 호호, ’


‘ 아, 그건 아니구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




음악을 고른 희수는 볼륨을 업시키고 와인 잔을 들어 건배를 구한다. 부르스가 낮게 깔리고 승희를 잡아끈 희수는 춤을 춘다. 승희는 내게 무안했던지 슬쩍 눈을 흘기면서도 이내 희수의 품에 안겨 스텝을 옮긴다. 둘이는 많이 춰봤던지 동작이 부드럽고 매끄럽다. 난 둘의 모습을 보다가 와인 잔을 거푸 비웠다. 그렇게 춤을 추던 희수가 내게도 춤을 권한다.




‘ 에이 난 못 춰. ’


‘ 괜찮아. 이 사람보고 리드하라면 돼. 이 사람 웬만한 춤선생 실력은 돼. ’


‘ 아이, 이이는 누가 보면 내가 유학 가서 춤만 췄는지 알겠다. 그러세요. 호진씨 나와 보세요. 내가 남자스텝을 해 볼 테니까 .. ’




억지로 끌려 일어난 난 엉거주춤하게 승희를 붙잡고 몇 발자국을 옮겨본다. 스텝이 자구 엇갈려 진땀을 빼다가 승희 허리를 감은 오른손에 힘이 가해지니까 승희는 가늘게 전율한다.


춤과 와인, 그리고 승희가 말해주는 유럽낭만주의, 우리의 대화는 새벽 한시까지 이어졌다.




‘ 자 이제 그만, 내일을 위해서 잠을 청하자. 내일은 저 건너 산에 한 번 올라가 볼까. 아까 보니까 저기 콘도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는 거 같던데. ’




희수가 자리를 정리하려고 한다. 그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난 가슴이 쿵쾅거린다.




‘ 내일, 우리 숯가마에도 가 봐요. 아까 오다 보니까 여기저기 숯가마가 많던데, 이 동네는 숯가마가 유명한가 보죠? ’


‘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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